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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 행/한국의 사찰

봉미산 신륵사 (2018.06.05)

by 하담1 2018. 6. 6.

 

 

봉미산 신륵사 (2018.06.05)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우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 혜근()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로 삼아 보은사()라고 불렀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  ]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 위에 있는 다층전탑()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낙보전(殿) 과 그이외의 부속건물로 구룡루() ·명부전(殿)·시왕전(殿산신당·육각정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륵사 [神勒寺] (두산백과)

 

 

2018년 6월 5일...여주 여강길 답사길에 들렸던 신륵사...

 

신륵사는 몇년전에 집사람과 들렸던 곳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그 때의 모습은 생각나지 않고 낯설기만 합니다. 분명 변한것은 하나도 없을 텐데...아마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는 관점이 변한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일주문에 들어서 경내에 들어가 한바퀴...언제나 처럼 경내에 들어가면 마음가짐이 단정해지는 것은 어쩔수 없습니다. 비록 모태신앙으로 불교를 갖고는 있니만 굳이 불교라는 신앙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 않으니 불교신자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집사람과 함께 왔다면 집사람은 극락보전에 들어가 기도를 할테고 나는 그 시간에 경내를 들러보고 있을 것입니다. 여지껏 그래왔던 것 처럼...

 

신륵사...아주 오래된 사찰로서의 고태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규모의 사찰로 잠깐 들려 안식을 찾기에는 그만인 사찰인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더욱이 강가의 절벽에 있는 누각에 올라 흘러가는 남한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쌓여 있는 마음속의 시름을 모두 흘려 버릴수 있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찰의 규모에 비하여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 많은 것은 이곳이 주변 환경에 잘 어울리는 사찰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주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가지를 들어 여주팔경으로 일컫으며 그 첫번째가 바로 신륵사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인 것을 보면, 여주에서도 신륵사는 수승한 경관과 오랜 역사로 인하여 여주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온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뭍은 여주에 왔다면 영릉과 함께 꼭 들려봐야 할 명승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신륵사 일주문을 지나면 불이문이 나타납니다.

 

경내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전경...

 

극락보전 앞에 있는 구룡루...신륵사 전설에는 용이 등장하듯이 거기에서 누각의 명칭을 얻은 것이 아닌가...

 

 

사찰의 한쪽에 있는 공덕비...

 

오래된 보호수...이런 보호수가 사찰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보물 제226호 신륵사 다층전탑(높이 9.4M)

신륵사 경내의 동남쪽 가악에 아담한 동산위에 세워진 이 전탑은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 전탑이다. 전탑이란 벽돌을 구워 탑을 쌓은 것으로 주로 중국의 탑들이 여기에 속한다.벽돌로 된 탑이 있다는 의미로 신륵사는 예로부터 벽절이라고 불리었다.

 

 

전탑 앞에 있는 누각...남한강변의 바위위에 세워진 누각...그 옆에 삼층석탑이 사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물 제230호 대장각기비 : 대장각비기는 고려 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대장경을 인출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된 비문을 보호하기위해 보제존자 석종비와 동일한 수법으로 둘레에 돌기둥을 세우 놓고 있다. 비의 형태는 조형면에서 보제존자 석종비보다 훨씬 간략해져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8호 신륵사 극라보전.

극락보전 건물 전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128호로 지정과 각주등의 스님이 주전각을 중창하였고 세종의 년(1440년)에 중수를 거쳐 영릉의 원찰이 된 후 극락보전이라 명명하고 성종 4년(1473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고 한다.

 

보물 제 225호 다층석탑(높이 3M)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다층 석탑은 흰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한 특이한 예로 조형감각이 뛰어난 매우 아아한 석탑이다. 현재 탑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정확한 층수는 알 수 없으나 탑의 아래 부분에 새겨진 용과 구름 문양의 세부 조각은 우수한 기량을 보이고 있다.

보물 제 180호 신륵사 조사당.

신륵사의 서북편에 위치한 조사당은 신륵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지공, 나옹, 무학 3화상의 덕을 기리고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영정을 모셔 놓은 곳이다.

 

 

 

 

보물 제 229호 조제존자 석종비

보제존자의 석종 뒤편에는 나옹화상이 밀양 영원사로 가는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한 후 정골사리를 봉안한 부도를 조성한 내용을 기록한 묘비가 있다. 목은 이색이 짓고 한수가 글을 쓰고 이인중이 각을 한 이 비문은 단정한 해서채로 기록되어 있다.

 

보물 제 231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석등 화강암이 주재료로 사용되었고 단순화되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석종형부도에 비해 이 석등은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을 풍기고 있어 조화을 이루고 있다.

 

보제존자 석종 바로 앞에 있는 석등은 석종부도를 장엄하기 위한 공양구이다. 사찰에서 석등을 밝히는 이유는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보물 제228호 신륵사보제존자 석종(높이 1.9M): 신륵사의 조사당을 지나 양지 바른 구릉을 오르면,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탁트인 남한강이 굽어 보이는 곳에 보제존자 나옹스님의 부도가모셔져 있다. 나옹선사의 입멸 3년 후인 1379년에 건립된 부도는 종 모양을 닮았다하여 석종이라 하였다. 넓은 기단의 전면과 측면에는 모두 계단을 만들고 기단은 여래개의 석재로 싸아 올려 그 중앙에 부도를 안치하였는데 이러한 형태는 통도사나 금산사의 계단사리탑의 형태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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