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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 행/조선의 왕릉

조선 왕릉 -여주 세종대왕 영릉(英陵) - 2018.06.05

by 하담1 2018. 6. 6.

 

 

세종대왕 영릉() - 2018.06.05

 

조선 제4대왕 세종(1397~1450)과 소헌왕후 심씨(1395~1446)를 합장한 무덤이다.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陵)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이자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무덤 배치는 [국조오례의]를 따랐다.

 

1446년(세종 28)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죽자 당시 광주(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무덤)의 서쪽 산줄기에 쌍실을 갖춘 능이 조성되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이고, 서쪽 방은 세종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하여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세조 때 영릉의터가 좋지 않다하여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나왔고, 1469년(예종1) 현위치로 옮겼다. 옛 영릉에 있던 상석, 장면등, 만주석, 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었으나 1973년 발굴하여 세종대왕 기념관에 보존하였다.

 

영릉에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설치되었으며, 봉분 내부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 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매워서 다짐) 형식으로 되어 있다.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으며, 난간석에 12지신상을 조각하는 대신 12지를 문자로 표현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다.

 

 

2018년 6월 5일, 여강길 답사 때 들러본 영릉...

 

현재 세종대왕릉은 봉분을 제외한 대부분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정문으로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고 효종대왕릉에서 왕의 숲길을 따라 세종대왕릉의 봉분만을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 정문을 통하여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중에 더 잘 다듬어진 영릉으로 태어 난다면 그것 또한 반가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봉분 하나에 혼유석이 두개를 놓아 합장한 것을 표시하였다는 글...확인해 봅니다. 왕릉에 있는 석물은 대동소이하여 특별히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없지만 세종대왕의 능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영릉을 여주로 옮긴 이후, 능지가 천하의 명당이라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더 연장되었다며 '영릉가백년' 이라는 말이 생겨 났으며,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영릉'은 장헌대왕(세종)이 묻힌 곳인데, 용이 몸을 돌려 자룡으로 입수하고, 신방에서 물을 얻어 진방으로 빠지니 모든 능 중에서 으뜸이다' 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효종대왕 영릉에서 왕의 숲길을 통하여 세종대왕릉으로 가고 있습니다....

 

왕의 숲길은 소나무 우거진 숲길...왕의 숲길은 700m로 자그만 언덕을 넘어야 합니다.

 

현재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세종대왕릉의 입구는 울타리가 쳐져 있고 출입통제구역입니다.

 

세종대왕릉으로 올라가는 길...

 

파노라마 사진으로 얻은 세종대왕의 능...

 

봉분은 하나이지만 혼유석이 두개로 합장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왕릉에 있는 석물...세종대왕릉은 병풍석을 설치하지 않고 난간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왕릉을 지키고 있는 무인석...1469년에 왕릉이 옮겨 졌으니 600년 가까이 된 석물이라고 봐야지요.

 

 

 

위에서 내려다 본 전경...

 

공사가 한창 진행중입니다.

 

왕릉 옆에는 울창한 소나무 군락...상당히 보기 좋습니다.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사진 한장....상당히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