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탐방(2020.11.20)-2
서장대는 진주성 서문의 지휘장대입니다. [여지도서]에 회룡루로 적고 있는데 규는 작지만 촉석루와 같은 다락집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서장대는 허물어진 것을 1943년 독지가 서상필씨가 중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으로 목조기와 집입니다. 원래 서장대의 현판은 없어졌고 지금의 현판은 은초 정명수의 글씨입니다.
호국사는 고려 말기에 왜구의 빈번한 침입을 막기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을 양성하기위해 세웠습니다. 고려 말 처음 건립될 당시의 이름은 내성사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숙종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창렬사는 임진왜란 당시 계사년(1593)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선조 40년(1607)에 건립된 사액사당으로 정사호가 건립했습니다.
이곳에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신위를 맨 윗자리에 모시고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경상우병사 최경희 등 39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진주성의 서쪽에 있는 창렬사는 정사인 창렬사와 양쪽에 동사와 서사가 자리하고 정면으로 출입문이 나 있는 ㅁ자형 배치입니다. 매년 음력 3월 초정일에 진주시 주관으로 39분 배위들의 후손들이 제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포루는 진주성을 방어하는 포진지입니다. 1607년 병사 김태허에 의해 진주성 내외성에 포루 12좌가 설치되었는데 여지도서의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조에 의하면 내정의 포루는 3곳이니 삼가, 의령, 곤양 등 3읍의 소속이고 외정의 포루는 9곳이니 진주, 단성, 초계, 거창, 사천, 함양, 남해, 합천 등 8읍 소속이라고 했습니다.
1969년부터 진주성을 복원하면서 상징적으로 1개소만 복원했습니다.
북장대는 진주성의 북쪽 지휘소로 진남루라고도 부릅니다. 광해군10년(1618) 남이흥이 중건했으며 조선 중기의 다락집 형으로 후대 군사시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북장대는 내성 북쪽 끝 제일 높은 곳에 있어 낭떠러지 밑의 성 밖은 물론이고 성내와 외성에 포진한 병사까지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호국충절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한 진주성 수호상으로 2000년 1월1일 제막했습니다.
진주성 우물.
진주성은 삼국시대부터 왜작의 침략을 막기위하여 쌓은 성으로 당시부터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후기 진주성도에 표시돼 있는 3곳의 우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임진년 진주대첩 당시 진주성의 관군과 백성들의 주요 식수원으로 사용됐던 것을 2013년 진주시가 발굴 복원했습니다. 복원된 우물의 크기는 8.3m, 직경 1.5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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