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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 행/한국의 사찰

여항산 의림사와 창원현관아(2020.11.21)

by 하담1 2020. 11. 27.

여항산 의림사 (2020.11.21)

 

신문왕 8년(688)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 다만 통일신라 때에 조성한 '의림사 삼층석탑'이 있어 그즈음 창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봉국사라 했다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머물자 의병들이 숲처럼 모였다 하여 의림사로 개칭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후기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는데, 정조 21년에 반포한 《장용영공문》에 본영()의 침해로 사찰이 폐사 지경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창되었으며, 현재 대웅전·염불당·나한전·삼성각·요사로 이루어져 있다. 나한전 뒤에 '창원 인곡리 모과나무'가 있다.

 

 

창원현관아(2020.11.21)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44호로 지정되었다. 1832년(순조 32) 진해현감 이영모()가 형방소(), 사령청(使), 삼문(), 객사(), 마방() 등 부속건물과 함께 진해현 동헌으로 건립하였다. 동헌은 1981년 9월, 1982년 7월에 보수하였고, 객사는 1983년 5월 불에 타 기단과 초석만 남아 있다.

건립 당시의 배치 방법은 알 수 없지만 동헌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군령을 출납하는 사령청, 왼쪽에는 손님을 맞던 객사, 앞에는 말을 사육하던 마방과 지방의 형사를 관할하던 형방소가 배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일자형 평면 건물로 양측에 1칸 방과 가운데에 우물마루를 편 대청을 두었는데 개축과 보수로 인해 건립 당시와는 다른 형태이다. 객사는 정면 11칸, 측면 3칸, 77평 규모의 솟을지붕 목조건물로 왕의 전패(殿)를 모시고 배례()하며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사주문() 앞에는 역대 현감의 공덕비 16기가 있다.

조선 후기에 건립된 관아건축 중에서도 대부분의 부속건물을 갖춘 드문 예였다. 지금은 건물 중심에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사령청은 현대식으로 보수되었으며, 형방소는 해체 보수되어 경역 밖에서 노인정으로 사용되는 등 원래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