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및 스리랑카 여행 ㅡ 마두라이의 이모저모
마두라이...BC 3세기부터 AD 11세기까지 파드야 왕조의 수도였던 마두라이는 첸나이에 이은 타밀나두 주 제2의 도시이자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불린다. 타밀나두 주를 상징하는 문장이 마두라이 최고의 볼거리인 스리 미낙시 사원을 본땄을 정도로 현지인들에게 마두라이의 위상은 높은 편이다.
일찍이 기원전 302년 그리스의 사신이었던 베가스테네스가 마두라이를 동방의 아테네라고 추켜세웠고, 로마의 사신 플리니는 로마의 부가 마두라이로 모두 빠져 나간다고 말했을 정도로 고대 무역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마두라이의 부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일화가 판드야 왕조를 멸망시킨 이슬람 장수 말릭 까푸르가 마두라이에서만 612마리의 코끼리와 2만 마리의 말, 셀 수없는 양의 금과 진주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다고 하니, 당대의 영광을 지금 상상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오늘날, 타밀의 골수 힌두들은 첸나이를 영국의 때가 묻은 오염된 땅으로 규정한다. 이슬람과 서구 세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영원한 힌두의 천년 왕국을 탐험해보자.
2017년 11월 26일, 바르깔라에서 깐냐꾸마리를 거쳐 도착한 마두라이...
마두라이는 남인도의 남쪽 해안가에서 내륙으로 조금 올라와 있는 곳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입니다. 예전에는 파두야 왕조의 수도였다고는 하지만...그 흔적으로 몇곳에 유적이 있기는 하지만 미미할 뿐입니다.
그중에 남인도 힌두사원의 대표적인 고뿌람을 자랑하는 스리 미낙시 사원이 가장 볼만한 곳이고...지금은 옛 영광을 찾을 수없는 흔적만 남아 있는 나약 궁전...그리고 근세에 인도 독립의 대표적인 인물인 간디의 박물관이 있을 뿐입니다. 또 한가지 더 있다면 스리 미낙시 사원과 연관이 있는 마리암만 떼빠꿀람 탱크...이런 유적들은 툭툭이를 빌려타고 한나절이면 모두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스리 미낙스 사원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하루 일정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바르깔라를 출발하여 깐냐꾸마리를 거쳐 오후 늦게 도착한 마두라이...이날은 그냥 호텔에서 푹쉬고 다음날 투어를 시작하여 한나절에 모두 끝을 냈습니다. 가장 먼저 들린곳은 호텔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스리 미낙시 사원...그리고 다음 찾아 간곳이 나약 궁전...나약 궁전까지는 걸어서 다녔고 그 이후는 툭툭이를 빌려서 다녔습니다.
간디 박물관에서는 입장시간에 제대로 맞추지를 못하여 한동안 기다려야 했지만 결국 내부에 들어가 구경하고...다음은 마이암만 떼빠꿀람 탱크를 거쳐 호텔로 유적을 일주하고 이날의 투어를 마치게 됩니다.
이날의 투어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간디박물관에서 오픈 시간을 기다리는 도중에 만난 어린 학생들...동양인이 신기하였는지 깊은 호기심을 갖고 이것 저것 물어보는 모습이 귀엽다고 할까...포즈까지 잡아주며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는 것까지...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현지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사실 여행중에 이런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좋은데......여의치 않지요. 유적들 돌아보기도 급급하니...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스리 미낙시 사원을 본 것입니다. 남인도를 대표하는 사원...그랬습니다.
티루말라이 나약 궁전.....
오늘날의 마두라이를 건설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나약 왕조의 궁전. 1636년 티루말라이 나약이 건설했는데 겨우 수십 년만 사용한 채 그의 손자인 쵸까나따 나약이 수도를 티루치로 옮겨 버리며 궁전으로서의 역활을 상실한다.
이후 타루말라이 나약 궁전은 마하라자들의 별궁 처럼 쓰였는데 그나마도 18세기에 접어들며 보존 상태가 극악을 달리며 황폐화의 길로 들었다. 지금의 모습이라도 보존되게된 결정적인 계기는 1858년 영국 식민지 정부의 첸나이 총독이었던 나피에르경이 기초 보존 공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이후 1971년 세계 타밀회의에서 티루밀라이 나약 궁전을 타밀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로 선정하며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공사를 거치고 있다.
현재 티루말라이 나약 궁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은 '천국의 정자'라는 뜻을 지닌 스와르가빌라시로 전형적인 인도 사라세닉 건물이다. 멀리서보면 영락없는 유럽식 건물인데,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들은 스리마낙시 사원에서 보던 것들이라 살짝 당황스럽다. 밤에는 빛과 소리의 쇼를 실시하는데 조사하던 시점에는 대대적인 개보수를 진행중이라 개최되지 않았다.
간디 박물관...
여러 번에 걸쳐 마두라이를 방문했던 간디의 행적을 기리는 박물관으로 바이하이강 북쪽에 있다. 델리부터 시작해 간디 유적지를 좀 찾아다녔다면 이쯤에서 슬슬 지겨워질 법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다른 지역의 간디 박물관은 간디 개인의 삶을 일대기적으로 보여주는데 촛점을 맞추었다면 이곳은 영국에 대항한 인도 독립운동사의 관점에서 간디의 역활을 주목하고 있다.
연대순으로 전시된 인도의 독립운도사를 살펴보고 수많은 운동가들의 보다보면 역사는 한 인물의 위대함만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새삼 깨닭게 된다. 박물관 전시의 끝이자 박물관 최고의 소장품은 간디가 암살되던 당시 입고 있었던 피 묻은 도티다. 참고로 1921년 마두라이에 머물던 간디는 변호사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서양식 정장을 벗어버리고 남인도 민중들의 표준의상이었던 도티를 착용한다.
가장 먼저 실생활로부터 영국식 잔재를 벗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던 셈인데, 이런 연유로 간디가 입었던 마지막 도티가 마두라이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마리암만 떼빠꿀람 탱크...
마두라이 외곽에 자리한 거대한 인공 저수지. 평상시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지만, 매년 1~2월 사이에 벌어지는 떼빰 축제 기간에는 엄청난 인파로 붐빈다. 떼빰 축제는 마두라이 제일의 종교 축제로 일종의 마낙시- 순다레스와라의 결혼식 축제다. 축제당일에는 미낙시 사원이 떠나가도록 결혼식 행사를 모방한 축하연을 거행한 뒤, 두 신상을 들고 마리암만 떼빠꿀람 탱크에 와 목욕을 시킨다.
일종의 초야를 지내기 위한 사전 준비인 셈으로 석양 무렵까지 씻긴 뒤 사원으로 되돌아가 신들의 밤을 보내게 한다고....축제 이외의 기간에는 조용하고 또 조용할 따름이다. 주변 분위기가 한적한 탓에 잠시 들러 숨을 돌리기에는 적당한 곳이다.
'해외 여행 > 남인도및스리랑카(2국) - 인도, 스리랑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인도 여행 ㅡ 마두라이의 스리 미낙시 사원 (0) | 2017.12.23 |
---|---|
남인도 여행 ㅡ 마두라이, 스리 미낙시사원의 웅장한 고쁘람 (0) | 2017.12.23 |
남인도 여행 ㅡ 깐냐꾸마리 (0) | 2017.12.22 |
남인도 여행 ㅡ 바르깔라의 자나르다나 사원 (0) | 2017.12.22 |
남인도 여행 ㅡ 바르깔라 해변 (0) | 2017.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