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여행 - 곡수당과 낙서재(2019.10.04)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1637년(인도 15년)에 들어와 1671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처음에는 띠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만든 집으로 지어 살다가 그 뒤에 잡목을 베어 거실을 만들었는데 후손들에 의해 와가로 바뀌었다.
곡수당은 작은 개울을 중심으로 초당, 석정, 석가산, 평대, 연지, 다리 화계등이 좌우로 조성되어 있었던 곳으로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휴식하는 공간으로 조성된 곳이다.
곡수당과 낙서재...
동천석실에서 내려와 마을 뒷산 밑에 있는 곡수당과 낙서재를 찾아 갑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 음양, 지리에도 능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뛰어나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었다는 윤선도...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머물렀다는 낙서재입니다.
낙서재로 가기 전에 녹수당에 잠시 들러보고...개천에 돌로 만든 구름다리는 무척 호사를 부린듯한 느낌을 받게 되지만 건물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깨끗히 잘 관리되고 있음을 느끼지만 무엇인가 허전함..그런 모습입니다.
녹수당에서 조금 더 올라간 위치에 있는 낙서재...탁트인 시야가 가슴을 활짝 열게 합니다. 정면에 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잡은 동천석실이 아스라이 보이고...조망하나는 끝내주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비록 유배를 온 처지이지만 풍수지리에 능통하였다고 하니 이런 자리를 잡았을지 않았을까...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유배를 온 처지에 최고의 호사가 자연환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겠지요.
귀암...고산유고의 귀암 시편에 나오는 4령중의 하나요, 윤선도 선생이 달맞이하던 장소로 기록된 이 바위는 화강암을 쪼아 거북형상을 만든 370cm × 270cm 규모의 바위로서 선생이 낙서재 터를 고르는데 중요한 지표였다. 2011년, 이 바위의 발견으로 보길도지에 기록된 소은병, 낙서재, 귀암의 축선을 확인하게 되어 낙서재 원형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낙서재 앞에 있는 귀암...이곳에서 달맞이 하였다고.....
사당. 고산 윤서도선생이 낙서재에서 돌아가신 뒤 이곳에서 얼마간 초장을 지낸곳이다.
전사청. 학관의 아들 이관이 제사를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제물, 제기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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