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여 행/경주여행

경주 여행(2020.11.06) - 석굴암

by 하담1 2020. 11. 10.

경주 여행(2020.11.06) - 석굴암

 

문화재청에 등록된 정식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래 이름은 석불사이다.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에 예속되었고,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사 대신 현재의 석굴암(石窟庵)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석굴암은 8세기 중엽인 통일신라 751년(경덕왕 10)에 대상(大相)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佛國寺)를 중창(重刱)할 때, 왕명에 따라 착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그는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는 한편,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설화를 기반으로 한 요소가 엿보이는 전설적인 유래이지만, 대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환생(還生)하였다는 김대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듯이 경덕왕대에 중시(中侍)로 있었던 김문량이 실존인물임에 비추어, 그의 아들인 김대정(金大正)이 신라의 기명(記名) 방식에 의해 대성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김대성은 왕명을 받들어 토함산의 정상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전개하여 불국사와 석굴암이라는 김씨 왕족(金氏王族)을 위한 2대 사찰의 건립에 마지막 생애를 다 바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석굴암은 김대성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하여 그 조영사업은 국가가 마침내 완성시켰다고 한다.

 

이 점은 분명히 석굴암의 창건이 김대성이라는 개인의 원력(願力)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왕실을 비롯한 당시 신라인 모두가 염원한 거족적인 일대 불사(佛事)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것은 석굴암의 방위(方位)가 김씨 왕족의 공동묘역(共同墓域)인 신라의 동해구(東海口)와 일치하고 있음을 보아도 더욱 뚜렷해진다. 동해구란, 삼국통일의 영주(英主)인 문무왕(文武王)의 해중릉(海中陵), 즉 대왕암(大王巖)이 자리잡고 있는 곳을 말한다.

 

문무왕은 욕진왜병(欲鎭倭兵)하고자 동해의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어 저승에서까지 국가수호의 집념을 잃지 않겠다는 군왕이었다. 이 같은 호국사상은 동해구의 유적인 해중릉을 비롯하여 감은사(感恩寺)나 이견대(利見臺), 그리고 석굴암과 동해구와의 관계 등에서 같은 맥락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 점은 석굴암의 창건주인 경덕왕의 선왕(先王), 즉 효성왕(孝成王) 역시 화장 후 산골(散骨)된 곳이 이 동해구여서, 석굴암 대불의 시각(視角)이 동남동 방향으로 동해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성이 있다.

 

그것은 곧 신라인의 믿음과 호국정신의 요람으로서 국찰(國刹)도 같았던 석굴암의 존재를 뚜렷이 부각시켜 주는 예라고 하겠다. 이로써 석굴암이 지니고 있는 신앙적인 측면은 물론, 조형적인 면까지 신라미술의 최고 절정을 이룬 민족 최대의 석조미술품으로 꼽아 결코 손색이 없는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199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2020년 11월 6일, 불국사에 이어 석굴암을 찾아 갑니다. 

 

그동안 세계의 많은 나라를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불교 유적을 많이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와 스리랑카를 비롯하여 동남아에 있는 많은 불교국가들을 포함하여 티벳불교로 잘 알려진 곳까지 다니며 많은 불교 유적과 불상을 보았습니다. 

 

해외 여행을 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유적과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그 때마다 우리나라의 유적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규모 또한 큰편이 아니라는 느낄 때가 많습니다. 비교 자체가 안된다는 좌절감....그렇지만 그중의 하나 이것만은 자랑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이 석굴암의 불상이었습니다.

 

예전에 타지마할을 본 순간 숨이 턱막힐 정도로 탄성이 터져 나왔었는데 성장한 이후에 그와 비슷한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던 곳이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석굴암 불상이었습니다. 

 

무엇이라고 딱 잡아 말 할 수는 없지만 불상을 딱 마주친 순간 숨이 멎고 가슴속 깊은 속에서 뭉클함이 솟구쳐 오름을 느낄수 있습니다. 왜 석굴암의 석불이 아름다운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깨닭게 되는 것이지요.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또 다시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우리나라 최고의 석불이라는 것...아마 그 이상일 것입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가슴속에 담아 가라는 뜻으로 받아 들입니다.